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지하철역에서 노숙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약속 장소로 가던 중이었던 나는 지갑을 열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돈 천원을 그에게 쥐어주었다. 예전의 친구의 모습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 저렇게 구걸할지도 모른다며 혀를 차던 아이였다.
친구는 초등학교 졸업 후, 언니와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중학교 2학년 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IMF 외환 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계사정이 기울기 시작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빚 때문에 몇 년간 보이지 않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친구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상처를 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고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의 봉사활동을 통해서였다. 특히,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도 저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입장이 바뀌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달라진 것이었다.
미국의 인문학자인 얼 쇼리스는 90년대 후반 빈곤층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클레멘트코스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이다.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이 과정은 배우는 입장의 노숙자가 자아정체성을 찾고 자활의 의지를 찾아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만들었다. 이는 절망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관점이 바뀌니 세상의 바라보는 방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무엇 하냐며 의심했던 교육자들 역시, 직접 그들을 가르치며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배웠다고 했다.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모두 입장차는 있었지만 함께 세상을 나란히 바라보게 된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역사 근처마다 노숙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 중에는 추운 겨울, 몸 사리며 잠을 청하는 사람, 칼바람을 맞으며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을 무능하게 바라보고 사회의 위협적인 요소라고 여긴다. 그러나 한쪽에선 절망에 빠져 삶에 대한 의지조차 잃은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어렵고 배고팠던 경험이 있거나 절망적인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일 수록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다. 내 친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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